<어느 경영자의 죽음>
사장을 생각하면 아직도 서글퍼집니다. 한 때 잘나가던 사람이 ‘사람’ 때문에 그 지경이 되었다니….
그래도 K 사장은 1980년대에 참 잘 나갔습니다. 당시 포워더 면허는 허가제였고 왠만한 ‘빽’이 아니면 나올 수 없었죠. K 사장은 청와대 인맥을 이용해 현재 건교부에 해당하는 정부기관에 압력을 가해 면허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영업 자체가 필요없는 호황의 시절이었습니다. S사를 설립한 K사장은 속된 말처럼 돈을 자루에 쓸어 담았습니다. 그리고 굴지의 포워더를 만들었죠.
그런데 K 사장은 미래를 ‘너무’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국내에서 머물기보다는 오지를 개척해 다국적 물류기업처럼 해외에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1990년 들어 처음으로 지사를 연 것이 바로 베트남 특송이었습니다. 실제로 1992년 수교 이후 베트남 시장은 정신없을 정도로 화물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K 사장의 안목은 거기까지였습니다.
화물 수요가 많은 대신 수금이 거치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악성 미수금은 계속 쌓이고 현지 직원마저 수금한 돈을 횡령해 도망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회사는 계속 기울어져 갔고 급기야 직원들이 나가 독립하면서 고객마저 빼앗기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번 돈을 베트남에서 모두 날리고 급기야 빚까지 지게 됐습니다.
결국 다시 1999년에 빈털터리 신세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가정도 파탄나고 갈데도 없이 곤궁했습니다. 결국 다른 포워딩 업체에 들어가 영업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안됐죠. 회사 사장과의 마찰 때문에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고시촌에서 저녁에 술을 먹다가 혈압 때문에 죽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경영자가 너무 앞서서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K 사장 동업자였던 미국 한인포워더 P사의 L 사장의 회고
사장을 생각하면 아직도 서글퍼집니다. 한 때 잘나가던 사람이 ‘사람’ 때문에 그 지경이 되었다니….
그래도 K 사장은 1980년대에 참 잘 나갔습니다. 당시 포워더 면허는 허가제였고 왠만한 ‘빽’이 아니면 나올 수 없었죠. K 사장은 청와대 인맥을 이용해 현재 건교부에 해당하는 정부기관에 압력을 가해 면허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영업 자체가 필요없는 호황의 시절이었습니다. S사를 설립한 K사장은 속된 말처럼 돈을 자루에 쓸어 담았습니다. 그리고 굴지의 포워더를 만들었죠.
그런데 K 사장은 미래를 ‘너무’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국내에서 머물기보다는 오지를 개척해 다국적 물류기업처럼 해외에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1990년 들어 처음으로 지사를 연 것이 바로 베트남 특송이었습니다. 실제로 1992년 수교 이후 베트남 시장은 정신없을 정도로 화물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K 사장의 안목은 거기까지였습니다.
화물 수요가 많은 대신 수금이 거치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악성 미수금은 계속 쌓이고 현지 직원마저 수금한 돈을 횡령해 도망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회사는 계속 기울어져 갔고 급기야 직원들이 나가 독립하면서 고객마저 빼앗기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번 돈을 베트남에서 모두 날리고 급기야 빚까지 지게 됐습니다.
결국 다시 1999년에 빈털터리 신세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가정도 파탄나고 갈데도 없이 곤궁했습니다. 결국 다른 포워딩 업체에 들어가 영업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안됐죠. 회사 사장과의 마찰 때문에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고시촌에서 저녁에 술을 먹다가 혈압 때문에 죽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경영자가 너무 앞서서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K 사장 동업자였던 미국 한인포워더 P사의 L 사장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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